
디스크립션
히어로 영화는 ‘정의’를 상징하지만, 그 정의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복잡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완벽한 정의를 꿈꾸기보다는, 갈등과 모순을 안고 있는 인간적인 정의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글에서는 히어로 서사가 완벽한 정의를 거부하는 철학적 배경과 그 의미를 분석합니다.
1. 이상적인 정의는 현실을 담을 수 없다: 복잡한 세계관 속 딜레마
전통적인 히어로 서사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전개되었습니다. 악당은 절대악으로, 히어로는 절대선으로 묘사되며,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현대 히어로 영화는 이런 이분법을 넘어서, 정의라는 개념 자체를 의심하고 해체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다크 나이트》입니다. 배트맨은 도시의 질서를 위해 하비 덴트의 타락을 숨기고, 자신이 그 죄를 대신 뒤집어씁니다. 이 장면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진실을 감추는 역설적인 결정을 보여주며, “과연 이런 선택이 진정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 가치관, 문화가 얽혀 있는 복합적인 세계입니다. 여기서 단 하나의 윤리 기준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히어로 서사 또한 이런 현실을 반영하며, 절대적이고 완성된 정의보다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흔들리는 정의, 불완전하지만 고민하는 정의를 택합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관객에게 더 깊은 몰입과 공감을 유도합니다. 현실의 우리는 누구나 모호한 상황 속에서 옳고 그름을 고민하고, 때로는 불완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정의를 추구하는 히어로는 그래서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오며, 그 고민과 딜레마는 곧 우리의 것이 됩니다.
2. 윤리적 회색지대: 선과 악 사이의 불확실성
히어로 영화가 오랜 시간 동안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 중 하나는, 히어로들이 단순한 ‘선의 화신’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현대의 히어로는 흠 없는 이상적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실수와 죄책감을 끌어안은 복합적 인물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은 군수 산업에 종사하며 수많은 무기의 개발에 관여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블랙 위도우는 러시아 첩보 요원 시절, 암살 임무를 수행하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이들은 ‘선한 편’에 서 있지만, 그 삶의 궤적은 선악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설명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히어로 영화는 ‘윤리적 회색지대’를 그려냅니다.
영웅들은 언제나 도덕적 확신 속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갈등, 후회와 반성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갑니다. 정의를 향한 그들의 여정은 직선이 아니라 복잡한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도덕적 딜레마가 얽혀 있습니다.
이는 현대 윤리학이 중시하는 ‘맥락주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절대적인 규칙보다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윤리 판단이 더 현실적이라는 시각이죠.
히어로가 처한 상황 역시 그러합니다. 어떤 선택이 진정 옳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순간들, 서로 충돌하는 가치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은, 정의란 단순히 ‘선’을 따르는 것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히어로 영화는 선과 악 사이의 선명한 경계 대신,
인간이 실제로 살아가는 도덕적 현실에 가까운 서사를 구성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히어로를 이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윤리적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절대적 정의는 권력화되기 쉽다: 정의의 정치적 위험성
히어로 영화는 단지 ‘정의를 실현하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정의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 누가 정의를 설정하는가에 대한 경계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이러한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사례입니다.
영화에서 정부는 히어로들을 제도 안에 편입시키려는 ‘슈퍼히어로 등록법’을 제안하며, 능력을 가진 자들을 통제하려 합니다. 토니 스타크는 이 제안에 동의하지만, 스티브 로저스는 개인의 자유와 양심의 선택을 더 중시하며 이를 거부합니다.
이 대립은 단순히 누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가 국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정의는 이상적인 가치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그 기준은 정치적 힘을 가진 누군가가 설정합니다. 그 기준이 고정되고 절대화되는 순간, 정의는 도덕적 실천이 아니라 권력의 언어로 바뀔 수 있습니다.
히어로 서사는 이 점을 깊이 있게 경고합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통제와 감시가 정당화되는 사회는 오히려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게 됩니다.
히어로들이 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반사회적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정의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이 진정한 정의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결국 히어로 영화는 정의가 하나의 완성된 법칙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 권력과 윤리 사이에서 계속해서 질문되고 갱신되어야 할 ‘과정’**임을 말합니다.
히어로는 스스로를 절대적 정의의 집행자로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묻고 통제하려는 존재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히어로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결론: 정의는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다
히어로 서사가 완벽한 정의를 거부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들은 ‘정답’을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이 정의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현대 사회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과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히어로들은 선과 악, 자유와 통제, 법과 윤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흔들립니다.
그들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그 속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존재입니다.
히어로 영화는 결국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가?",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의 규칙이 충돌할 때,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남아, 각자의 삶 속에서 반응을 일으킵니다.
완벽한 정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다시 되돌아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합니다.
히어로들은 그 여정을 살아가는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히어로는 ‘완성된 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하며 질문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깊이 있게 반영하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