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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의 정의관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가 수호자, 윤리적 모순, 다원성

by Money697 2026. 1. 14.

영화 '배트맨 vs 슈퍼맨'
영화 포스터

 

디스크립션

 

‘정의’는 시대마다 다른 얼굴을 가집니다.
히어로 영화 역시 이 흐름 속에서 고정된 가치가 아니라, 시대의 요청에 따라 정의의 개념을 재구성해왔습니다.
고전적인 정의가 법과 질서, 선악의 명확한 구분에 기반했다면,
현대의 히어로 정의관은 갈등, 모순, 회색지대 속에서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를 드러냅니다.
이 글에서는 히어로 영화가 시대별로 정의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고 변화시켜 왔는지를 살펴봅니다.


1. 전통적 정의: 법과 질서의 수호자

히어로 영화의 초기 정의관은 매우 명확했습니다.
‘정의’란 곧 법을 지키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히어로는 그 정의를 구현하는 절대적 선의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 히어로인 슈퍼맨, 캡틴 아메리카, 원더우먼
절대 악에 맞서는 이상화된 인물들이며,
그들이 내리는 선택은 언제나 올바르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맨은 1938년 대공황과 세계대전 직후 혼란 속에서 등장한 캐릭터입니다.
그는 미국식 가치(자유, 평등, 애국심)를 바탕으로
시민을 보호하고, 범죄와 맞서 싸우는 이념적 히어로로 그려졌습니다.
초능력을 가졌지만 그 힘을 남용하지 않으며,
늘 법과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만 행동합니다.
그는 정부를 대신해 행동하지 않지만, 그 어떤 정부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가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안정과 통제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을 필요로 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히어로들은 사회 제도가 불완전하더라도
그 틀을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보완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때의 정의관은 ‘절대적 선과 절대적 악’의 이분법을 기반으로 하며,
히어로는 선한 국가, 선한 법, 선한 시민을 보호하는 존재로 이상화됩니다.
여기에는 “정의는 곧 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
히어로는 법을 초월하지 않으며, 오히려 법의 대리인처럼 행동합니다.

또한 냉전 시대의 히어로들은
명확한 이념적 적(예: 공산주의, 외계 침략자, 테러리스트 등)을 설정하고,
이를 무찌름으로써 정의를 실현합니다.
이러한 서사는 복잡한 사회 문제나 윤리적 갈등보다는
단순한 도식 속에서 선과 악의 대결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질서의 회복 = 정의의 구현’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하지만 이 정의관은 국가주의적 시각에 기반한 일방적 정의일 수 있다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히어로의 힘은 체제 유지와 질서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며,
그 과정에서 소수자나 비주류의 시선은 배제되기 쉽습니다.
초기 히어로들은 대부분 백인 남성이었고,
그들이 지키는 ‘질서’는 사실상 당시 주류 사회의 질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통적 정의관은 질서 중심적이며, 권력과 법의 정당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히어로는 체제 바깥의 인물이지만, 언제나 체제 내부의 가치를 수호합니다.
이러한 정의의 모델은 이후 시대적 변화와 함께 도전을 받게 되고,
현대 히어로 영화에서 재해석되며,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정의관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2. 현대적 정의: 내면의 갈등과 윤리적 모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히어로 영화의 정의관은 뚜렷하게 변화합니다.
더 이상 히어로는 절대적인 선의 대변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 윤리적 갈등 속에 놓인 존재,
그리고 때로는 사회적 책임에 회의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는 단순히 캐릭터 설정의 변화라기보다,
현대 사회가 ‘정의’라는 개념을 더 이상 일방적·이분법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배트맨은 범죄와 싸우기 위해 고담시의 법과 제도를 넘어서 행동합니다.
그는 때로는 불법적인 감시 장치를 사용하고,
하비 덴트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스스로 악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합니다.
배트맨은 스스로를 영웅이 아닌 “고담이 필요로 하는 어둠”으로 인식하며,
정의 실현의 과정이 반드시 도덕적이지는 않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서사는 윤리 철학의 결과주의와 의무론 사이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수많은 미래 중 유일한 승리를 위해
타노스에게 시간의 돌을 넘기는 결정을 합니다.
이는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동반하지만,
그는 미래의 더 큰 결과를 위해 단기적 악을 감수합니다.
그 판단은 과연 도덕적일까요?
현대 히어로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선의 실현’이 아닌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정의를 재구성합니다.

또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정의의 기준이 하나가 아님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입니다.
토니 스타크는 슈퍼히어로들의 활동을 국제적 감독 아래 두는 것이
시민의 안전을 위한 길이라 믿지만,
스티브 로저스는 그러한 통제가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침해한다고 주장합니다.
둘 다 정의를 말하지만, 그 정의가 향하는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충돌하고, 그 균열은 전통적 정의관이 지닌 절대성을 무너뜨립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영화적 장르의 진화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도덕 인식 구조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 글로벌 불평등, 권력의 복잡성 속에서
현대인은 더 이상 ‘절대적 선’을 믿지 않습니다.
히어로가 실수하고, 갈등하고, 때로는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지지 못하는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인 ‘정의의 구현자’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처럼 현대 히어로는 더 이상 질서의 수호자가 아닙니다.
그는 모순된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선택을 되묻는 도덕적 주체이며,
그 정의는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시선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형되고 재해석되는 가치로 작동합니다.


3. 오늘날의 정의: 다원성, 소수성, 구조적 불평등

최근 히어로 영화는 단순히 악당을 물리치고 질서를 회복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다시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정의의 다원성과 상대성, 그리고
기존 시스템에서 배제되었던 소수자·비주류의 시선이 자리합니다.
오늘날의 히어로 정의관은 더 이상 보편적이고 단일한 가치가 아닌,
누구의 정의인가, 어떤 목소리가 중심에 있는가를 탐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블랙 팬서》(2018)**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
식민주의의 잔재, 흑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세계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다룹니다.
주인공인 티찰라는 와칸다라는 고도로 발전된 국가의 왕이지만,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억압받는 흑인 공동체를 외면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특히 킬몽거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억압받은 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의 방식은 폭력적이지만, 그의 분노는 정당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며,
관객은 이 복잡한 감정 속에서 기존 정의의 기준 자체가 편향되어 있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또한 **《이터널스》(2021)**와 같은 작품은
영웅 그 자체가 세계를 조종하는 초월적 존재의 일부였다는 설정을 통해,
인류가 정의라 믿는 것조차 상위 존재의 설계에 불과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성별, 인종, 장애, 문화가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정의는 정치적, 문화적 다양성의 충돌과 조율 속에서 구성됩니다.

더불어 《더 보이즈》, 《왓 이프...?》, 《로키》 같은 시리즈는
히어로의 권력 자체를 해체하거나,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이중성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히어로는 더 이상 도덕적 우월자의 위치에 있지 않으며,
그들의 판단은 개인적 욕망, 정치적 이익, 혹은 문화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 사회의 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젠더, 인종, 계급, 지역에 따라 ‘정의’는 다르게 해석되며,
특정 계층만의 기준을 절대화하던 과거의 히어로 정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자각이 관객에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즉, 정의는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사회적 위치와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교차적 경험입니다.

결국, 오늘날의 히어로 정의관은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의 목소리가 침묵당했는가’를 중심에 두며,
기존 히어로들이 수호하던 체제의 정의가 아닌, 체제에 저항하는 정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히어로 장르가 더 이상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에 머물지 않고,
현대 사회의 정치적 윤리적 갈등을 반영하는 철학적 장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정의는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시대의 언어다

히어로 영화는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의 얼굴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정의는 법과 질서,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절대화되기도 했고,
개인의 고뇌와 사회적 불평등을 반영하는 담론으로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이 변화는 단지 히어로 영화의 진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윤리 감각과 세계 인식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히어로 영화 속 정의를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정의를 믿고, 어떤 정의를 의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오늘날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성찰의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