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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정의의 집행자인가, 폭력의 정당화인가 정의, 폭력정당화, 이상

by Money697 2026. 1. 11.

영화 '맨 오브 스틸'
영화 '맨 오브 스틸'

 

디스크립션 :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 정당화 가능한가?

 

현대 히어로 영화는 단지 악당을 처단하는 통쾌한 장르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정의’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폭력이라는 구조가 자리합니다.
배트맨, 아이언맨, 슈퍼맨 등 대표적인 캐릭터는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행사할 때마다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거나 법적 테두리를 넘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정면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히어로의 ‘선한 의도’와 ‘결과적 성공’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과연 선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악당을 막기 위해 도시 하나가 파괴되는 것이 정말 정당한 정의의 구현일까요?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과 조드의 싸움으로 메트로폴리스는 폐허가 되지만, 영화는 그의 승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으며, 폭력의 책임은 모호하게 처리됩니다.

이처럼 현대 히어로 영화는 폭력을 감정적으로 설득하거나, 시각적 스펙터클로 미화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합니다.
결국 히어로의 폭력은 도덕적으로 무결한 행위가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용납 가능한 것’으로 가공된 행동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히어로가 행사하는 폭력이 과연 정의로운가, 혹은 사회적·윤리적 시각에서 봤을 때 폭력의 자기정당화에 지나지 않는가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히어로 서사 속 폭력이 현실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떤 시선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1. 히어로는 법 위에 있는가? – 제도 바깥의 정의

히어로는 종종 국가의 법과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기를 해결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배트맨은 범죄가 만연한 고담시에서 경찰과 법원이 무력할 때, 개인적인 방법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나섭니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법적 절차 없이 범죄자를 쫓고, 필요하다면 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 고문이나 감시 같은 권한도 스스로 행사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배트맨을 “정의의 집행자”로 보이게 만들지만, 동시에 ‘법 위의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배트맨이 내리는 판단은 과연 누구로부터 검증받을 수 있는가?
그의 행동이 실제 피해자를 위한다 하더라도, 국가와 사회가 합의한 정의의 기준과는 괴리가 있습니다.
공공의 법을 대신해 사적 판단으로 행동하는 히어로는 자칫하면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자경단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정의를 구현한다기보다, 자신이 믿는 정의를 강요하는 형태의 폭력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러한 설정이 때로는 영웅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그려지지만,
현실 세계에서라면 매우 위험한 선례입니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 서로 충돌할 때,
그 충돌을 공정하게 조율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히어로는 때때로 그 법적 질서를 건너뛰고, 자신만의 ‘정의’를 기준으로 행동하며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윤리 기준을 우회합니다.

이러한 히어로의 위치는 관객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과연 한 개인이 법을 넘어설 만큼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 있는가?”
“개인의 신념이 공동체의 합의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가?”
그리고 “법보다 먼저 움직이는 정의는 과연 정의인가, 정당화된 폭력인가?”

결국 히어로 영화는 이러한 딜레마를 통해
정의의 경계, 제도의 한계, 그리고 도덕적 폭력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히어로는 때로 구원자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법의 빈틈을 채우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모순 속에서 관객은 히어로가 행사하는 ‘정의의 이름을 건 폭력’이 진정 정당한 것인지,
혹은 단지 미화된 자력구제(自力救濟)에 불과한지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2. 폭력의 정당화와 스펙터클의 문제

히어로 영화는 본질적으로 액션 장르의 문법을 따릅니다.
즉, ‘싸움’과 ‘승리’의 서사 구조를 통해 관객에게 극적인 몰입과 감정적 쾌감을 제공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폭력’입니다.
주먹질, 총격, 폭발, 전투… 이 모든 것은 시각적 스펙터클로 연출되며,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고 흥미를 극대화하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는 분명해집니다.
폭력이 윤리적으로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 ‘볼거리’로만 소비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나 《엔드게임》에서는 전 우주적 전쟁이 벌어지고 수많은 존재가 죽어갑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충격이나 고통을 세세하게 조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슬로모션과 음악, 화려한 그래픽으로 전투 장면을 장엄한 장면으로 포장합니다.
관객은 ‘정의로운 전투’라는 서사에 빠져들며, 폭력 자체를 정당한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히어로 영화는 종종 폭력을 “정의 실현의 수단”으로 정상화하며,
관객은 그 파괴력이나 희생보다 ‘승리’와 ‘통쾌함’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폭력의 정당화가 스펙터클을 통해 이뤄지는 지점입니다.
그 행위가 얼마나 윤리적인가보다, 얼마나 ‘멋있게’ 표현됐는가가 평가 기준이 되는 것이죠.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과 조드의 전투로 도심이 초토화되는 장면은 이 논점을 잘 보여줍니다.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민간인의 희생이 분명하게 예상되지만,
영화는 그 전투를 비극적으로 조명하기보다 ‘신과 신의 충돌’처럼 웅장하게 묘사합니다.
이후 후속작에서야 이 전투의 피해가 서사에 반영되지만,
초기 연출은 분명히 관객에게 쾌감을 주는 전투 장면으로 기능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서사는 폭력을 단순히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서, ‘영웅의 폭력은 괜찮다’는 암묵적 메시지를 내포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에서도 히어로는 악당을 때리고, 건물을 부수고, 수단과 관계없이 목적을 달성합니다.
이는 자칫하면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물리적 폭력을 정상화하고, 폭력의 윤리적 논의를 생략하는 서사의 반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히어로 영화가 폭력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블랙 팬서》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같은 작품은, 전투의 대가나 권력의 남용, 정치적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대체로 주류 히어로 영화는 ‘정의로운 목적을 위한 폭력’이라는 수단을 시각적 쾌감으로 포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대 히어로 영화는 스펙터클이라는 미학적 장치를 통해,
폭력을 단지 ‘문제 해결의 도구’가 아닌 ‘관객 만족의 요소’로 소비하게 만듭니다.
이는 윤리적 질문을 흐리게 만들며, 히어로의 폭력이 진정으로 정당한가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3. 폭력 없는 정의는 가능한가? – 현실과 이상 사이

히어로 영화는 대개 갈등과 충돌, 그리고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투’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합니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자연스럽게 정의 실현 = 물리적 충돌 = 폭력의 사용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폭력 없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히어로는 반드시 싸워야만 영웅이 되는가?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는 ‘필연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악당은 협상으로 설득되지 않으며, 물리력을 통해서만 제압할 수 있는 존재로 설정됩니다.
결국 히어로는 그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력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되며,
관객은 그 선택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이처럼 폭력은 정의 구현의 필수 조건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그 윤리적 검토에서 면제받습니다.

그러나 일부 영화들은 이런 폭력 중심 서사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블랙 팬서》의 티찰라는 영화 후반부에서 물리적 전투보다는 국제 사회와의 외교, 지식 공유, 자원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정의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폭력이 아닌 제도와 연대, 관계 맺기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도는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서사는 단지 악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 정의라는 것을 환기시켜 줍니다.

또한 《왓치맨》이나 《시빌 워》처럼 히어로 간의 갈등을 그리는 작품들은
폭력 자체가 정의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들에서는 히어로가 서로 다른 신념 때문에 충돌하며,
그들의 싸움이 과연 ‘선과 악’의 대결이었는지, 아니면 신념과 신념의 폭력적 대립이었는지 모호하게 남깁니다.
이러한 접근은 히어로 서사에 내재한 폭력의 논리를 의심하게 만들며,
폭력 없는 정의 실현의 가능성을 다시 질문하게 만듭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폭력 없는 정의가 가능해야만 합니다.
법, 제도, 시민사회, 국제 연대는 모두 폭력이 아닌 방식으로 정의를 조율하고 실현하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히어로 영화는 이러한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거나 생략하고,
문제를 빠르고 시원하게 해결하는 ‘폭력 서사’로 환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폭력적 수단’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제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물리적 해법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인식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히어로 영화에서 폭력이 중심 서사로 기능할수록,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점점 흐려집니다.
하지만 몇몇 영화들이 보여주듯, 폭력 없는 정의는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어렵고, 더 복잡하며,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진짜로 ‘정의로운 방법’이란 어쩌면 그런 비효율적이고 인간적인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결론: 정의를 입은 폭력인가, 폭력을 감춘 정의인가

히어로 영화는 단순히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폭력의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히어로는 법의 집행자인가, 아니면 법 위에 군림하는 무력의 상징인가?
관객은 이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히어로의 결정에 안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정의는 폭력의 수단 없이도 실현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순간,
히어로 서사는 더 이상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현대 윤리의 시험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