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크립션
최근 히어로 영화에서 멀티버스는 단순한 설정을 넘어 서사의 중심 원리로 작동한다. 다른 세계의 존재, 수많은 변형된 자아, 운명을 뒤엎는 선택, 그리고 세계 간 전쟁까지. 이 거대한 구조는 의외로 종교 서사와 닮아 있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다중 세계’, ‘보이지 않는 차원’, ‘심판과 구원’, ‘윤회의 변주’와 같은 초월적 세계관을 통해 인간의 불안과 질문을 조직해왔다. 멀티버스 서사는 현대 관객에게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글은 멀티버스가 왜 현대판 종교 서사처럼 기능하는지, 그리고 히어로 영화가 이를 어떤 신화 구조로 구축하는지 분석한다.
챕터 1. 다중 세계관의 매력: 종교는 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든다
종교는 늘 ‘여기’만 말하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 윤회와 업, 신들의 영역, 영적 차원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가 반드시 존재한다. 이는 단지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불완전함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다. 현실에서 이해되지 않는 고통과 불평등, 우연한 죽음과 부조리는 단일 세계의 논리로는 설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종교는 세계를 확장한다. “진짜 세계는 따로 있다.” “보이는 것은 일부일 뿐이다.” 이런 세계 확장은 인간의 불안을 질서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멀티버스 역시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단일 세계가 감당할 수 없는 질문—왜 나는 실패했는가, 왜 사랑은 깨졌는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멀티버스는 구조적으로 수용한다. 멀티버스에서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전환된다. 즉, 삶의 비극을 단일한 결말로 고정하지 않고 “다른 가능성의 층”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또한 멀티버스는 인간의 존재감을 확대한다. 우리는 작은 개인이지만, 무수한 세계의 자아를 가지는 존재로 재정의된다. 이는 종교가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개체가 아니라 영혼, 신의 형상, 업을 가진 존재로 해석하는 방식과 닮았다. 세계가 하나일 때 인간은 유한하지만, 세계가 여러 개일 때 인간은 “다른 차원까지 연결된 존재”로 격상된다. 멀티버스 서사가 히어로 장르에 적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히어로는 원래 현실을 넘어선 존재이며, 멀티버스는 그 초월성을 세계관 차원에서 정당화해준다.
결국 다중 세계관은 위안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실패한 선택은, 다른 차원에서는 구원될 수 있다는 감각을 남긴다. 종교가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인간의 불안을 다뤘듯, 멀티버스는 서사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을 조직한다.
챕터 2. 멀티버스의 신학적 기능: 운명, 죄, 구원의 재배치
종교 서사의 핵심은 운명과 죄, 구원이다. 인간이 왜 이런 삶을 사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체계다. 멀티버스는 이 세 가지를 새롭게 배치한다. 먼저 운명은 더 이상 단선적이지 않다. 단일 세계에서 운명은 ‘하나의 길’로 서술되지만, 멀티버스에서는 운명이 분기한다. 그 결과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명제가 흔들린다. 대신 “운명은 구조이며, 선택은 그 구조 안에서 반복된다”는 더 복잡한 형태가 등장한다. 이것은 종교가 말하는 예정론과 자유의지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둘째로 죄의 개념이 확장된다. 멀티버스 서사에서 죄는 단지 도덕적 악행이 아니라, 균형을 깨뜨리는 행위로 정의되기 쉽다. 특정 사건을 되돌리거나, 다른 차원의 질서를 침범하거나, 시간과 세계를 조작하는 행위가 ‘금기’로 등장한다. 이는 종교적 금기와 닮았다. 금기는 단순히 나쁜 짓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다. 그래서 멀티버스에서 죄는 개인 윤리에서 우주 윤리로 확장된다.
셋째로 구원은 개인의 구원에서 세계의 구원으로 전환된다. 멀티버스 구조에서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세계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선택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구원은 더 이상 “모두를 살린다”가 아니라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를 판단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종교 서사의 심판과 닮아 있다. 심판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판결이다. 멀티버스는 그 판결의 스케일을 무한대로 확장한다.
또한 멀티버스는 구원 서사를 무한 반복 가능하게 만든다. 종교는 죽음 이후의 세계, 재림, 윤회처럼 ‘끝 이후의 이야기’를 제공한다. 멀티버스는 더 직접적이다. 한 세계가 끝나도 다른 세계가 남는다. 한 인물이 죽어도 다른 변형이 존재한다. 이는 죽음과 종말을 견딜 수 있는 서사적 장치이며, 현대 관객에게 “끝은 없다”는 감각을 제공한다. 이러한 면에서 멀티버스는 현대의 종교적 상상력을 매우 강하게 대체한다.
챕터 3. 히어로 신화의 확장: 멀티버스는 ‘정전(正典)’을 만든다
종교가 종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집합이 아니라 ‘정전(정통 텍스트)’이 필요하다. 정전은 세계관의 기준을 정하고, 무엇이 올바른 이야기인지 규정한다. 흥미롭게도 멀티버스는 히어로 영화에서 이러한 정전 기능을 수행한다. 기존 작품에서 모순되던 설정과 리부트, 다른 배우의 캐릭터까지 멀티버스로 모두 포섭되며, 세계관의 통일성을 확보한다. 이것은 종교가 서로 다른 전승을 하나로 묶어 신화를 체계화하는 과정과 닮았다. 다양성은 혼란이 아니라 신성한 확장으로 재해석된다.
또한 멀티버스는 신화적 존재론을 강화한다. 히어로는 더 이상 한 시대의 영웅이 아니라, 무수한 차원에서 반복되는 원형(archetype)이 된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어떤 구조적 운명”을 의미한다. 사랑을 잃고, 책임을 배우고, 희생을 감수하는 패턴이 반복될 때, 그는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신화적 역할이 된다. 이는 종교에서 성인(聖人)이나 예언자들이 ‘역할’로 재현되는 방식과 유사하다.
멀티버스는 또한 팬덤을 신앙 공동체처럼 조직한다. 종교가 해석 공동체를 만들듯, 히어로 서사는 설정을 분석하고 연결하는 집단적 해석 활동을 촉발한다. 쿠키 영상, 떡밥, 세계관 연결, 이스터에그 분석은 일종의 현대적 주석 작업이다. 무엇이 정통 세계관인지, 어떤 설정이 진짜인지 논쟁하는 과정은 종교의 교리 논쟁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멀티버스는 이런 해석을 무한히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이며, 서사는 소비를 넘어 ‘참여’가 된다.
결국 멀티버스는 히어로 영화를 단일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 체계로 만든다. 세계관은 커질수록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신념처럼 작동한다. 관객은 특정 영화의 재미를 넘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구원과 심판을 수행할지 기대하며 따라가게 된다. 이런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수행해온 기능—불안을 정리하고 의미를 제공하는 기능—과 겹친다.
결론
멀티버스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현대 히어로 영화가 구축하는 종교적 신화 구조의 핵심 장치다. 다중 세계관은 현실의 불완전함을 설명하고 위안을 제공하며, 운명·죄·구원이라는 종교적 질문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또한 멀티버스는 방대한 서사를 정전화하고, 히어로를 원형적 존재로 격상시키며, 팬덤을 해석 공동체로 조직한다. 그래서 멀티버스는 현대판 종교 서사처럼 기능한다. 우리는 그 속에서 끝이 아닌 가능성, 절망이 아닌 다른 세계의 구원을 상상한다.